영원한 자유 부록 ⑤
마르따, 파우로, 윌리엄, 찰스, 데레크, 콜리스, 노먼, 지미, 헨리, 그나나틸리카
제 11 화 전생에서 환생을 약속한 마르따
1917년 10월에 스물 여덟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리아 준아리아데 오리베이로는 브라질의 돈 페리시아 마을 사람이었다. 그녀는 두번이나 연애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나머지 폐병으로 죽었다. 특히 그녀의 두번째 애인이었던 후로징호가 주위의 반대로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살해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충격은 더욱 컸던 것이다.
마리아가 죽고 열달이 지난 1918년 8월 14일, 이 지방의 학교 교사인로렌쯔 부부 사이에 열 두번째의 아이인 마르따가 태어났다. 그녀가 두살 반이 지나면서 전생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에, 그 부모는 즉시 이아이는 마리아 준아리아의 환생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마르따가 한살이 되기 조금 전에 그녀의 전생의 아버지인 오리베이로가 로렌쯔 씨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녀는 오리베이로 씨에게 안기려 하며'아빠'라고 부르는 듯하였던 것이다.
마르따는 자기의 전생이름을 '마리아' 라고도 하고 또 '싱하'라고도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이름 하나는 '준아리아'라고 하느냐고 그의 아버지가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녀의 전생이야기는 사망한 싱하의 아버지 오리베이로 씨의 농장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소와 양들이많이 있고 오렌지가 많이 열렸다고 하며, 우물물을 먹었다고 했다. 또어머니의 말 안장을 보면서 자기와 함께 산 것이라고 했다. 싱하와 이다는 사이가 좋아서 사실 그랬던 것이다.
마르따는 자기가 싱하였을 때 몹쓸 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다. 그것은마을 축제에 구경갔다가 심한 비를 맞은 이후부터였다고 했다. 싱하는폐병으로 죽었다. 싱하의 임종 직전에 문병을 갔었던 마르따의 어머니이다는 그때 일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이다 곁으로 다가와서 그 귀에속삭이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난 꼭 환생할 거야, 당신의 딸이 되어서.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생애의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거예요."
그러나 그때 싱하가 겨우 한 말은 "난, 난 약속해…"하는 말이었다.이 '마지막 약속'은 마르따가 전생 발언을 시작하기까지는 로렌쯔 부부만이 알고 있었다. 싱하의 장례식은 폐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겨우 몇 사람만 참석했는데 마르따는 그때 참석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소리질렀다. 세리카가 "싱하, 싱하" 하면서 자기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리카의 환상(幻想)을 본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세리카의 죽음이 전해졌다. 세리카가죽은 시각은 마르따가 환상을 본 시각과 꼭 맞았다. 세리카는 싱하의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다는 싱하에게 물어보았다.
"싱하는 내가 농장에 갔을 때 어떻게 나를 대해주었지?"
"커피를 준비하고 집앞의 돌 위에 축음기를 장치하고서 집밖에 나가기다렸지요."사실이었다. 이다의 집과 싱하의 농장과는 12마일이나 떨어져 있었지만싱하는 이다가 오는 날을 미리 알고는 이렇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이처럼 싱하도 마르따와 같이 초능력을 갖고 있었다.
마르따는 자기 집에 온 싱하의 첫번째 애인을 알아보았다. 또 사촌도알아보았다. 어느 날 부친의 상(喪)을 당한 마을 여인이 마르따의 집에왔을 때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생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것이예요. 나를 보세요. 나도죽었었지만 이렇게 아직 살아 있잖아요."
마르따는 열두살 때 오리베이로의 농장에 갔다. 가면서 농장으로 가는 도중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전생의 집안에 들어가서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시계 뒤에 금색으로 자기이름이 조각되어 있다고 했다. 벽에서 떼내어 보니 과연 금색으로 '마리아, 준아리아, 데, 오리베이로'라는 싱하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흑인 노예의 이야기, 집에 있던 고양이 따위에 대한 전생기억은모두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싱하는 일부러 병사(病死)한 여인이다. 그녀의 최후는 목과 폐를 앓아서 거의 말도 하지 못했었다. 마르따도 어릴 때부터 기관지염을 잘앓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잠겼다고 한다. 또 마르따는 피와 비에 대해거의 병적인 공포를 갖고 있었다. 그 후 쉰살이 더 지나도록 싱하의 자살한 애인 후로징호에 대한 기억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제 12 화 언니가 죽어서 남동생으로 환생한 파우로
파우로는 앞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르따의 남동생이다. 그는 마흔세살에 피해망상증으로 누이인 로오라의 집에서 자살하였다. 파우로 역시어느 인물의 환생이었다. 곧 로렌쯔 집안에는 형제들 중에 환생한 아이가 둘이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로렌쯔 씨에게는 파우로 위로 열두명의 형제들이 있었는데, 맨 위의 누이가 '에미리아'라고 했다. 그녀는 열 아홉 살이던1921년 10월 12일에 약물자살을 하였다. 로렌쯔 씨가 심령문제를 연구하였듯이 그의 아내도 심령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때로는영매(靈媒)의 역할을 하여 영혼과 직접 교신을 하기도 했다. 에미리아가 자살한 얼마 후에 모친은 에미리아의 영혼에게서 통신을 받았다. 그녀는 자살한것을 후회하며 남자아이로 환생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예언이 있은 뒤에 에미리아가 자살한 지 약 1년 반이 지난1923년 8월 3일에 파우로가 태어났다.
파우로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아이하고만 놀고 남자와는 놀지 않았으며, 또 인형을 무척 좋아하였다. 그리고 옷도 바지를 입지 않고 스커트만을 입으려고 하였다. 음식 먹는 데 있어서 그에게는 흥미로운 버릇이있었다. 빵을 먹을 때에는 아무리 새로 만든 부드러운 빵이라고 가장자리를 뜯어내고 먹었다. 이것은 에미리아와 같은 버릇이었다. 네살 때에는 배운 적도 없는 재봉틀을 사용하여 바느질을 하였는데, 집에 있는재봉틀을 보고 자기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자기에게 재봉하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데그것은 에미리아의 재봉 수업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에미리아가 동생들중에서 로오라를 가장 귀여워했듯이 파우로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살면서 누이인 로오라의 집에서 함께 살고 싶어하였다.
에미리아는 자신이 여자라는 것에 불만을 품어왔다. 20세기초의 브라질에서는 여자에게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고, 특히 미혼여성이 혼자서여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미리아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동생들에게 자주 말했던 큰 이유중의 하나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파우로도 여행을 무척 좋아하였다. 스티븐슨교수가 그를 만난것은 그가 서른아홉살이었을 때인데 그는 그때까지도여성적인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교수는 그에게 일종의 심리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것은 동성애의 남자와 여자를 테스트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파우로는 여성경향도를 보여주었다. 이때 그는 독신이었고 결혼할 뜻도 없는 듯하였다. 그는 여행 등의 자유에 대한 희망과여성적인 경향의 두 가지 이유로 독신으로 지내다가 마흔세살 때 자살하였다.
제 13 화 손자가 되어 환생한 윌리엄
다음에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는 알래스카와 카나다에 살고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여러 부족들을 통칭하는 트란짓트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들은 모두 가명을 썼는데 남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관계자들의 희망을 받아들인 것이다.
월리엄 죠오지 1세는 훌륭한 어부였다. 그는 다른 트란짓트인과 마찬가지로환생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으며, 죽음이 가까와짐에 따라 환생하고 싶은 소망은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자기 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세째 아들과 며느리에게 자기가 만일 환생한다면 그들의 아들로 환생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 몸에 있는 두개의 반점을 가리키면서 그 아이는 이와 똑같은 모반(母斑)을 가지고 태어날 것이니 이 표시로써 자기가 환생한 것인 줄 알라는 것이었다. 그 두개의 반점을 하나는 왼쪽 어깨에, 또 하나는 왼쪽 팔꿈치 옆에 있었다. 윌리엄 죠오지1세는, 죽기 얼마 전에, 그의어머니로부터 받은 금시계를 아들에게 주면서 그 시계를 잘 보관해 두라고 하였다. 훗날 환생할 것임을 나타내보이겠다고 했다.
그러고서 몇 주일 후인 1949년 8월에 그는 자신이 일하던 어선에서실종되고 말았다. 그 뒤에 얼마 안 가서 셋째 며느리는 임신을 하여1950년 5월 5일 아기를 낳았다. 이 아이는 아홉번째 아이였다. 윌리엄죠오지 1세의 실종이 있은 지 9개월이 경과한 뒤였다. 며느리는 출산시의 진통 중에 꿈을 꾸었다. 시아버지가 나타나서 빨리 자기 아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꿈에서 깨어난 뒤,마치 시아버지가 있는 것 같은 환각에서 주위를 살펴보았다고 한다.그녀가 꿈속에서 본 시아버지는 죽기 전의 어른 모습 그대로였다.
태어난 아기에게는 시아버지의 경우처럼 왼쪽 어깨와 왼쪽팔에 검은색의 모반(母斑)이 있었다. 이로 인하여 아기에게는 윌리엄 죠오지 2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성장하면서 그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죠오지 1세의 환생이라는 확신을 더욱 갖도록 하였다. 1세와 얼굴이 닮은것은 물론이고 걸음걸이와 성격까지도 비슷하였다. 그리고 고기잡이나배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어느 만(灣) 부근이 제일 좋은어장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어선의 그물 사용법도 배우기 전부터이미 아는 듯이 보였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보석함을 정리하고 있는데, 방에 우연히 들어왔다가 금시계를 보더니 "이건 내것이야" 하면서 자기가 갖겠다고 하는것이었다. 그후 열살 쯤 되면서부터는 전생기억들이 거의 없어졌다.
제 14 화 부족 전쟁에서 전사 후 환생한 찰스
이 사례에서는 어린 시절에 전생기억을 가지고 있던 바로 그 당사자가 자기의 전생을 이야기하였다. 1961년 스티븐슨 교수가 조사할 당시에 찰스 포터 씨는 쉰살이 넘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전생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며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로써 자기의 전생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 사례는다른 것과는 좀 다른 특징을 갖는다.
어린 시절에, 그는, 트란짓트 인디언 부족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에서싸우다 창에 찔려 죽은 사람이 환생한 것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살해당한 장소와 죽인 상대바의 이름, 또 자기의 전생의이름 등도 말했다는데, 전생에 자기를 죽였다는 사람은 그의 외숙부였으며 당시에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찰스가 자기의 죽음에 관해 말할 때는 오른쪽 배를 가리키며 창에 찔려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처가 있는 줄을안 것은 성장한뒤에라고 말했다. 그의 오른쪽 배의 늑골 바로 밑에 검은색 반점이 있는 것을 스티븐슨 교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자리를창으로 찔린다면 간장을 상해서 즉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찰스 포터는 1907년 시트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다섯 살위인 누이의 말에 의하면, 찰스가 부족 전쟁에서 살해되었다고 말한 시기는 1909년에서 1915년 경의 일이다. 그리고 그를 죽인 사람이라고 한 노인이아직 살아 있었다. 가령 이 노인이 1910년에 적어도 예순다섯살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1845년에 출생한 셈이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트란짓트인이 보족 전쟁에서 점차로 창을 사용하지 않게 된 시기는 1852년에서 1882년 사이일 것이라고 한다. 1845년에 태어난 사람이 장성하여 창을 쓰는 전쟁에 참가했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맞는 것이다. 부족 전쟁중에 창으로 살해되었다는 찰스의 말은 이 점에서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이미 아흔살이 넘은 찰스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사실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전인격(全人格)이 살해되었다고 하는, 문제의 전투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이나 참가 인물 등의 일을 이 이상 확인할 수가 없었다.
스트븐슨 교수는 그 뒤에도 62년, 63년, 65년, 72년에 각각앨러스타의 그를 방문하였고, 때로는 편지연락도 했다. 1972년 예순다섯살인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기독교인의 교리와 환생신앙이 양립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15 화 창검에 대한 공포를 가진 데레크
1852년(또는 1853년)에 알래스카의 시트카와 랑겔 두 지역의 트란짓트인들 사이에는 화평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시트카 측에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랑겔의 대표자 사십여 명을 살해했으며 그 중 몇 명만이겨우 랑겔로 도망쳐 돌아왔다. 이 일이 있는 뒤로 1918년에 새로이 화평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양 부족 사이에는 반목이 계속되었다.
데레크가 출생한 것은 1918년으로, 그 참극이 있은 지 60여년이나 지나서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배에 모반(母]斑)이 하나 있었는데, 그자신은 어릴 때부터 이 점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의조상 중 어떤 한 사람의 신상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안것은 서른여덟살이 된 1955년이었다. 어느 날 문득 웬 할머니가 그 모반을 보더니 랑겔의 토착민인 '쿠'라는 사람이 입은 치명상과 똑같은모양을 하고 있다고 일러준 것이다.
데레크는 그 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쿠'라는 사람은 앞서말한 참사가 일어났을 때, 자기 부족인들을 죽이려거든 자기를 먼저 죽이라고하며 맨손으로 당당하게 대항하다가 가장 먼저 살해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데레크 자신은 전생의 기억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쿠에대한 전생기억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와 쿠와의 사이에서 깊은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는 점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첫째가 어린 시절부터 칼, 총, 창 등에 특별한 공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소년 시절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칼을 가지고 놀거나 하지못했다. 제2차세계대전 중 그는 군대에 입대했으나 총검의 훈련을 아주 싫어 했다.또 자신의 아이들도 칼을 가지고 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그의 병적인 공포증은 총과 같은 다른 무기에 대해서는 나타나지 않고칼날이 달린 무기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었다. 둘째로 그는 랑겔 태생인데 시트카 사람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시트카에 거주하면서 시트카의 트란짓트인의 조직 속에서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 두 지역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좌절과 실망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시트카의 트란짓트인에 대한 그의 행동에서, 화평 교섭을 위해 시트카에까지 원정을가서 생명을 잃은 쿠와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이 지나고 장년기에 이르도록 칼에 대한 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그가 식사 때에 나이프를 쓴 적이 없다고 하였다. 또 데레크 자신을 긴장했을 때 가끔씩 배에 통증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전생과 질병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 16 화 조카딸의 아들로 환생한 콜리스
트란짓트인들 중에 빈센트라는 사람은 죽기 1년쯤 전에 그의 누이의딸, 곧, 조카딸인 초트킨 부인에게 강한 친근감을 보이면서 그녀의 아들로 환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또 그는 지금의 자기처럼 말더듬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와 꼭 같은 흉터를 갖고 있을 터이니 그것이 자기의 환생증표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등에 있는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또 코 오른쪽에 있는 점을 가리키며 그것도 증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가 죽고 8개월이 지난 1947년 12월에 초트킹 부인은 아들을 낳고, 그를 콜리스 초트킹 2세라고 이름지었다. 그는 태어나면서 빈센트가 죽기 전에 말했던 것과 똑같은 점과 흉터를 코와 등에 갖고 있었다.콜리스가 말을 배우게 되면서부터 그의 이름을 물으면 '카코디'라고 하였다. 그것은 빈센트가 속해있던 부족 이름인데, 빈센트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족 이름인 '카코디'로 알려져 있었다. 콜리스는 그것을 완전한트란짓트의 발음으로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숙모가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곧 그녀는콜리스가 태어나기 좀 전에 빈센트가 초트킹에 와서 살게 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콜리스가 두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거리에서 빈센트의 딸과 아들 그리고 그 부인을 만났는데 얼굴을 알아보고 이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또다른 기회에 그는 빈센트와 친척 사이인 사람들을 몇 명 알아보았다.그는 빈센트와 관련된 사건 두 가지를 말하였다. 하나는 생전의 빈센트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엔진 고장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다른 배의 구조를 받은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빈센트로서 자기 부인과 함께현재의 콜리스씨 집을 방문했을 때에 잠자던 방을 기억해낸 것이다.
콜리스의 어머니가 놀란 것은 그가 보여준, 빈센트와 흡사한 몇 가지행동의 특징이었다. 콜리스는 머리를 빗을 때 언제나 이마쪽으로 머리를 내려 빗었는데 그것은 빈센트와 똑같은 습관이었다. 더구나 이것은부모가 빗어주던 머리 모습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또 빈센트는 아주심한 말더듬이었다. 환생해서는 말더듬이었다. 유달리 신앙심이 깊은것도 같았다. 빈센트처럼 콜리스는 배와 해상생활을 좋아해서 바다위에서 생활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빈센트가 왼손잡이였듯이 콜리스도 어린시절에는 그랬었다.
제 17 화 데자?뷰에 의해 전생을 기억한 노먼
노먼은 1944년에 출생하였다. 그는 서너살쯤 되던 어느 날 부모와 함께 고향에서 50km쯤 떨어진 외딴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노먼은 갑자기 흥분하여 자기는 이 바닷가에서 훈제소를 하고 있었고나중에 장님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흥분한 모습으로 이렇게말하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노먼은 이 바닷가에서 한 말 이외에는 전생의 말을 하지 않았다.
노먼의 이 말은 그의 할아버지인 헨리 데스피스 1세의 생애와 두가지사실에서 일치하는 점이 있다. 할아버지는 어업에 종사하며 이 바닷가에서 훈제소를 갖고 있었다. 1935년에 여든다섯살로 죽었는데 마지막4년 동안은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1930년에 이훈제소를 버렸고, 노먼이 그곳에 간 1947년에는 말뚝 몇개가 남아 있을뿐 훈제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노먼은이 바닷가에서 한 말 이외에는 전생의 일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것으로써 노먼은 할아버지가 환생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노먼은 시력이 약해서 열네살 때부터 안경을 쓰게 되었다. 심한 근시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나 또 그의 네 형제들은 시력에 아무 장애가없었다.
이 사례에서처럼, 처음보는 상황이 과거 어느 때에 체험한것 같다는,일종의 착각 현상인 데자?뷰(Deja-Vu) 경험에 의해 환생을 말하는 사례는, 구체적인 자료는 적으나,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환생 사례이다.
제 18 화 누님의 아들로 환생한 지미
지미 스벤손은 1952년 11월 22일 시트카에서 태어났다. 그가 전생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두살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전생에 현세의 엄마의 동생이었으며 크러쾅 마을에 살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트카에서약 160km쯤 떨어진 크러쾅에는 엄마의 동생인 존 시스코가 이전에 살았었다. 지미는 화가 날 때면 곧잘 "나는 크러쾅에 가서 외할머니와 함께살겠다"고 했다. 이렇게 이삼년 동안 전생 이야기를 하다가 그 뒤로는말하지 않게 되었다.
스티븐슨 교수는 1961년에 이 사례를 조사했는데 그때 아홉살이던 지미는 이미 전생 일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 기록은 그의 부모와 형제들의 간접증언에 의한 것이다.
지미의 외삼촌 존 시스코가 죽은 것은 1950년 여름으로 스물다섯살때였다. 어느 날 두 사람의 여인과 함께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에 뱃놀이를 나갔는데 몇 시간 뒤에 보트만 발견되었다. 그의 사망이 단순한사고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두 여인의 질투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하지않다. 그런데 지미는 자기는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배에는, 태어날 때부터, 총탄 자국으로 보이는 네개의 모반(母斑)이 있었다.
그밖에는 몇개의 환생기억을 이야기했다. 자기는 존이지 지미가 아니라 하면서 크러쾅에 가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뒷날 크러쾅에 갔을 때마을사람들이나 장로에게 강한 친밀감을 보였으며, 시스코의 친구였던이를 만나서는 고기잡이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외삼촌 한스시스코에게 "나는조카가 아니고 동생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전생기억은 네살 때부터 흐려지기 시작했다.
제 19 화 전생의 총탄 흉터를 가진 헨리
헨리 엘킨은 1899년에 앙군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가슴과 등에는 모반이 있었는데, 서로의 위치로 볼 때에 총탄이 앞뒤로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해 전생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앙군의 공회당에 갔을 때에,건물 안의 한 곳을 가리키며 "저기서 예전에 외할머니를 자주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을 뿐이다. 1880년 이전에는 여자들이 이 공회당에 모여 전쟁에 나간 남자들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던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헨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었다.
헨리는 여덟살 때에 전생에 대한 일을 문득 기억해냈다.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물에 빠진 두 사람을 구해준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그런 사건은 있었지만 그것은 헨리가 태어나기이전의 일이라고 했다.
헨리의 이런 기억들을 확인할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그의 진술에의거할 뿐이다. 스티븐슨 교수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이 바다에서의 사건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말했다. 곧 부모에게서 "그 두 사람의생명을 구해줄 무렵에는 아직 너의 누이가 살아 있었고 누이는 그때 아버지의 배에 타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누이란 아직 헨리가 어렸을 때 열 두어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이야기에서 볼 때 이누이가 죽었을 때 그는 대여섯살쯤 되었으리라고 보면, 헨리는 1899년에 태어났으니, 누이의 죽음은 대략 1905년 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때가 열두어살 때였다고 한다면, 그녀는 1892년에 출생한 셈이다. 이누이가 아버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것은 대여섯살 이후였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문제의 인명구조 사건은 1897년 쯤의 일이다. 헨리가 1899년에서 불과 2년 앞선 일이다.
헨리의 전생기억이 분명하다면 이것은 전생경험에서 얻은 것이라고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면 이런 기억들을 그가 환생하기 이전의 중간적 생애에 대한 기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사례는 트란짓트인의사례 조사에서 중간적 생애에 대한 전생기억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제 20 화 여자로 환생한 그나나틸리카
그나나틸리카는 1956년 2월 14일 스리랑카(실론)의 헤두나훼와에서태어났다. 그녀는 두살이 조금 지나면서 전생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종합해 보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버지는 우편배달부다. 어머니는 뚱뚱하다. 다아다사라는 형이 있는데 개에 물린 적이 있다. 누이 한 사람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어머니는 자주 땔감을 샀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마을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약 30km떨어진 탈라와켈레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에서 돈을 주고 땔감을 산다는 얘기는 전에 그나나틸리카가 말했던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 마을사람의 애기를 듣고 그녀의 아버지는 속으로 깜짝 놀랬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마을 사람의 이야기가 그나나틸리카를 강하게 자극한 듯했다. 그때부터 더욱 상세하게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생에 탈라와켈레에 살았다. 거기에는 야자나무가 없다. 학교갈 때 기차를 타고 간다.누나인 수두아카도 학교에 간다."
그나나틸리카가 네살 때에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탈라와켈레에 찾아갔다. 전생의 집이 있었다는 우체국까지는 잘 찾았는데 막상 그 집은찾지 못했다. 그곳은 건물이 없는 빈터였다. 그녀가 전생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전해들은 데라 스님은 전생 발언을 토대로 하여 그녀의 전인격(前人格)을 찾아냈다. 그는 탈라와켈레에 살았던 소년으로, 틸레케라트네라고 했고 1954년 11월 9일 열세살로 죽었다.
이런 소문을 전해듣고서 텔레케라트네가 다니던 중등부의 교사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나나틸리카는 금방 그 선생님을 알아보면서 이름도기억해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는 한번도 꾸중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한번도 야단친 일이 없는 특이한 교사였다. 그녀의아버지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부처님이 고행에서 성불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한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이야기합니다." 그이야기는 이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었다.
또 그나나틸리카가 "기차를 타고 학교에 통학했고 긴 터널을 지나갔다" 고 한 전생 발언도 이 선생님의 방문으로 입증되었다. 틸레케라트네는 햇튼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가는 길에 실론에서 가장 긴 터널이 있어서 그는 학교를 다니느라 하루에 두 번 이 터널을 통과하였던것이다.
그녀는 또 아직 보지도 못한 햇튼 시(市)의 거리 모습을, 특히 학교와 역을 중심으로, 정확히 그려보였다. 또 그녀의 오빠가 어느 큰 행사때에 춤을 보이러 탈라와켈레에 간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행사는 실론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한 영국 여왕의 방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여왕이 타고 있던 기차의 창너머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본 일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생전의 틸레케라트네는 인간은 죽어서 환생하는가를 묻고 환생할 때에 남자가 여자로 태어날 수도있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1961년 초 그나나틸리카가 다섯살일 때 그녀는 다시 틸라와 켈레에왔다. 그녀는 부모와 스님, 그리고 선생님들이 모인 곳에서 전생 가족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들을 모두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 때 특기할 것은 틸레케라트네가 좋아했던 누이에게는 특별히 친밀감을 보이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불상(佛像)을 깨뜨린 형에게는 반감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모두 틸레케라트네의 전생의 태도와 상응하는 것이다.
그 후 열네살이 될 즈음 그녀는 극히 평범한 소녀가 되었다. 머리 모양이나 체격 등 어디로 보나 남자의 환생이 아니라 정상적인 여자 아이였다. 그러나 언제나 파란 하늘 빛깔을 좋아했다. 그것은 틸레케라트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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